<인간 극장> 사랑하는 희에게 눈물의 편지를 쓴다. 이은형 김준희 씨 부부, 54년 펜팔로 5번 만나 결혼, 준희씨는 치매 초기, 차비 없어서 도망 못갔어, 다시 보내는 편지
<인간극장>
사랑하는 희에게
2021년 10월 4일 ~10월 8일
이은형(76세), 김준희(76세) 씨 부부는 54년 전 펜팔로 사랑을 키워왔다.
얼굴도 모른 채 1년 6개월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5번 만남 끝에 결혼 했다.
한없이 착하고 순종적이던 아내가 이상해졌는데,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고 매일 다니던 길을 헤매고 했던 말을 반복했다.
4년 전 병원에서 진단 받은 치매 초기 일상생활이 위태로운 아내를 보살피며 은형 씨는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본다.
# 아내의 기억이 사라지고 있다.
부부는 52년 동안 동고동락한 세월동안 준희 씨는 한없이 착한 며느리이자 순종적인 아내였다.
그런 아내의 행동이 이상해졌는데, 천사 다니던 길을 잃어버리고, 매일 다니던 길을 잃어버리고, 같은 질문을 반복하묘 엉뚱한 말을 하며 씻지도 먹지도 않은 채 멍하니 누워만 있고, 혼자 있는 것을 불안해하며 온종일 은형 씨만 쫓아다닌다. 어떤 날 치매가 심해지면 자식도 알아보지도 못한다.
치매 초기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은형 씨는 남편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던 아내였기에 더 혼란스러워하는 남편이다.
52년 동안 남편이 알던 아내는 어디로 간 것일까?
은형 씨는 다시 세월을 되짚어보기 시작하는데...
# 오래된 흑백 영화처럼
시작은 사진 한 장에서부터였고, 흑백 사진 속 단발머리 아가씨는 23년간 연애 한 번 못 해본 은형 씨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해 무작정 자신을 소개하는 편지를 보냈고, 그렇게 동가내기 남녀는 사랑을 싹틔웠다.
남편 은형 씨가 아내 준희 씨를 부르는 애칭은 ‘희’였다.
‘희’는 순진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 상냥한 아가씨였고, 우정이 변치 말자는 뜻으로 보내온 달맞이꽃, 어긋난 첫 만남과 아쉬움을 가득 담은 편지 수줍게 보낸 선물, 1년 6개월 동안 두 청춘은 오래된 흑백 영화 같은 사랑을 했다.
수많은 감정이 오고간 후 두 사람은 만나게 되고, 가난한 대가족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이었던 은형 씨는 준희 씨가 동네에서 가장 부잣집 딸인 것을 알고 자격지심으로 마음을 접으려고 했지만 용감했던 준희 씨가 은형 씨를 붙잡아주어 두 사람은 결혼할 수 있게 되었다.
# 차비가 없어서 도망을 못 갔어
준희 씨는 결혼 후 펼쳐진 것은 꽃길이 아닌 가시밭길 이었는데,
은형 씨는 8남매의 장남이었고, 막내 시동생은 겨우 6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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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희 씨는 대가족의 돌보느라 손이 부르트도록 방아를 찡허 식구들에게 밥을 해 먹이고 나면 자신이 먹을 밥은 없었다.
부잣집 아가씨였던 준희 씨는 난생처음 배고픈 설움을 알았고, 시집온 지 삼일 만에 갑자기 앓아누운 시어머니, 집에 사람이 잘못 들였다고 수군대는 통에 준희 씨는 눈물도 많이 흘리고, 게다가 다정했던 남편은 결혼 후 무심하게 변했고, 어머니가 잠들 때까지 머리맡을 지키던 효자 은형 씨에게 가장 중요한 건 가족이 배곯지 않고, 사는 것이라 고생하는 준희 씨를 보듬어 주지 않고 장손도 아닌데 할아버지와 조상들의 제사를 모셔와 지내고, 조상의 사당을 정비하기 위해 큰돈을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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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고집불통 남편을 묵묵히 따르기는 했지만 아내의 속을 썩어 들어만 갔다.
준희 씨는 시집갈 때 돈을 지니고 오면 근심이 생긴다는 속설 때문에 돈 한 푼 챙겨 오지 않아, 돈이라도 있었다면 도망이라도 갔을 텐데 그렇게 힘든 세월 탓인지 달콤했던 연애편지의 기옥조차 희미해져간다.
# ‘사랑하는 희에게’ 다시 보내는 편지
은형 씨는 아픈 아내를 보살피며 52년간의 결혼 생활을 돌이켜보고, 뭘 하든지 지식과 남편이 1순위였던 아내는 평생 동안 일만 하느라 허리가 꼬부라질 동안 괜찮냐고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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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형 씨는 늦은 후회라 하더라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해 어설프게나마 집안일을 하고 아내가 힘들까 농사 규모를 줄였다.
아내는 정신을 잡으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안쓰럽고, 사소한 일에도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하고 있다.
무엇보다 아내를 지켜보는 시간이 많아졌고, 아내의 신발이 난 구멍을 먼저 알아채기도 하고, 색칠 공부를 하는 아내에게 색연필도 깎아주고 97세의 시어머니 역시 며느리 약을 챙기고 집안 살림도 틈틈이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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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도움으로 한동안 심각했던 준희 씨의 상태는 더 악화되지 않고 올해는 호전하기까지 하게 되었다.
준희 씨는 농시일도 조금씩 거들고, 4년 만에 남편의 생일 미역국도 끓여준다.
그런 아내 은형 씨는 52년 만에 준희 씨에게 다시 편지를 쓰고 여태껏 하지 못했던 말들과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담아 ‘사랑하는 희에게’ 눈물의 편지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