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연인이다>자연인 이가영, 해처럼 바람처럼, 티베트풍 이색정취 자연인, 옥순봉 봉우리 7번째 봄 자연인, 폐트럭에서 잠자는 자연인
<나는 자연인이다>
해처럼 바람처럼
자연인 이가영
뒤산의 보호 아래 해와 바람을 닮아가는 여인 자연인 이가영 씨(59) 씨는 자연에 툭 몸을 맡긴 채 대지를 따스하게 비추는 해처럼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여 흘러가는 저 바람처럼 살겠다고 다짐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앉아 자연인은 해를 그림으로 담고, 지독한 어둡고 차가웠던 자신의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어주고 아픈 사람들에게 온기를 전하기를 희망한다.
깊은 산 중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그때의 산골을 떠올리며 여름이면 계곡에서 수영을 즐기고, 가을에는 산을 타고 송이 땄던 그 시절 자연인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공부하러 서울에 사시는 이모 집에 머물게 되었다.
이모 집에 머물며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두 사람은 어려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지만 20만원으로 둘만의 결혼을 하고 가영 씨는 21살에 딸을 낳았다.
행복할 것 같았던 결혼 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부부의 사이가 소원해졌기에 자연인은 아들을 낳으면 남편이 달라질까 싶은 마음에 아들을 낳으며 남편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극복할 수 없는 부부의 문제로 이혼을 결심한 가영 씨는 아이들이 더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고민한 결과 재단사였던 남편에게 두 아이를 맡기기로 하고 헤어지게 됐단다.
이혼 당시 가영 씨는 해본 일이라곤 살림뿐이었는데, 아이들을 위한다면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지만 떼어놓고 온 아이들을 생각하면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이 밀려온다.
가영 씨는 깊은 절망감에 빠져 여려 번 목숨을 끊으려고 했으며, 몇 번의 죽을 고비까지 넘겼다.
그러다 신속에서 연명할 때까지 연명하다가 죽기 해 인적 없는 깊은 산중에서 풀을 캐 먹고 언 물을 녹여 마시고 그렇게 1년이 흘러갔고, 풀숲과 강가에 있던 폐트럭 짐칸을 오가며 잠을 청하기를 4년, 지금에서야 “주지 않고 살아지더라.”라며 덤덤하게 말을 잇는다.
자연인은 만약 도시에서 그 시간을 보냈다면 시름시름 앓다 죽었을거라 말하는데, 자연이 가영 씨를 다시 살게 만들었고, 살아갈 힘을 얻은 가영 씨는 또 한 번 바람이 이끄는 대로 이곳으로 들어왔다.
자연인은 고향의 옥순봉과 똑 닮은 봉우리 아래 그녀는 자신만의 집을 짓고, 자연에 물들고 스며들며 7번째 봄을 맞이한다.
“마치 티베트에 온 것 같지 않나요?”
자연인은 티베트풍 이색 정취를 자아내는 공간에서 직접 만든 옷을 입고, 천연 그대로의 음식을 즐기고 당당히 홀로 선 그녀가 일구어낸 터전에서 생기와 활력이 충만하고 에너지가 가득하다.
이제는 가영 씨는 더 잘하려고 애쓰지 않으며, 예뻐지려 힘쓰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간다.
마음이 가끔 힘들어질 때면 자신만의 방식대로 봉우리에 올라서 하느님 부처님 원망도 하고, 달밤 아래에서 품을 추기도 한다.
해처럼 바람처럼 흔들림을 모르는 바위처럼 그윽한 향내 풍기는 들꽃처럼 가영 씨는 자연을 닮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