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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독소전쟁 80주년 기획 4편
9월 7일 화요일
제4편 몰락, 베를린 최후의 2주일
1945년 4월 16일 독일 베를린을 향한 소련군의 총공세가 시작되고, 이미 대다수의 독일 주력부대는 궤멸되었고,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서 히틀러는 극도의 불안감을 보였다.
히틀러는 부하 장군들에게도 분노를 쏟아내기 시작했고, 점점 파멸을 향해 가는 나치의 말로와 다가오는 ‘독소전쟁’의 종전, 끝, 베를린 몰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 뒤바뀐 공수, 진격하는 소련과 궁지에 몰린 독일
스탈린그라드 전투 이후 승기를 잡게 된 소련은 본격적으로 독일을 향한 공세를 시작하고, 처음 독일이 소련을 침공한 그날 1944년 6월 22일 소련은 전쟁사상 유례없는 규모의 병력과 장비를 이끌고 독일로 향한다.
‘바그라티온 작전’은 독일 패망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무섭게 진격하는 소련군이 맞서기 위해 독일은 급기야 ;히틀러 유겐트‘하 불리던 어린 소년병들을 전선으로 내몰기 시작했고, 치열한 소련의 공세와 방어 태세로 전환한 독일의 전황은 어떨까?
# 히틀러 최후의 요새, 비밀 벙커
1945년 4월 20일 지상에서의 마지막 공식 행사를 마치고 히틀러가 향한 곳은 총통 관저 지하 비밀벙커로 최첨단 시설로 견고하게 설계된 비밀벙커에서 히틀러는 최후의 순간까지 생활했다.

비밀벙커는 당시 다른 일반 벙커들과는 달리 거대한 주반시설이 갖추어져 있었고, 히틀러는 이 곳에서 상상도 하지 못한 음식을 먹으며 생활했다고 한다.
히틀러는 벙커에서 지상에서는 총탄이 난무하는 가운데도 즐겨 먹었다는 음식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지 벙커 전문가와 함께 비밀 벙커에 대해 알아본다.

# 히틀러 권력 유지 비결
독일 국민들은 우려와는 달리 전쟁 막바지까지도 물자 보급의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고, 나치독일이 국민의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 민생안정에 힘썼기 때문이었다.
독일은 전시 상황에도 불구하고 독일에서는 단순 기호 식품도 생산되기까지 하였다.

히틀러가 기울어져가는 전세에도 민심을 잃지 않았던 다른 이유는 카리스마 넘치는 그의 연설이었는데,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비법 외에 히틀러의 연설에는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비밀이 숨어져 있다.
스피치 전문가 이민호 강사와 함께 히틀러 연설의 비법을 파헤쳐본다.

# 함락된 베를린, 히틀러와 나치의 몰락
베를린은 소련의 엄청난 공세에 초토화되고, 독일 국민들은 탈출은 시도했지만, 히틀러는 자국민들에게 인종주의를 적용하여 빠져 나가는 이들을 모두 처단했다.
‘약한 국민은 죽어야 한다.’는 히틀러의 이념이 반영된 베를린은 생지옥과 같았다. 히틀러의 광기어린 발악에도 불구하고 1945년 4월 30일 결국 소련에 의해 독일 제국의회의사당은 점령됐다.

히틀러와 연인 에바 브라운은 베를린이 함락된 날 결혼식을 올린 후 동반 자살을 단행했다. 독일 국민계몽선전장관이었던 괴벨스와 그의 아내 역시 6명의 자녀들을 모두 살해하고 극단적인 선택해 유럽 일대를 전쟁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나치 독일 정권은 막을 내렸다.
독일에게 역사의 반성이라는 숙제를 남긴 나치 정권의 끝과 ‘독소전쟁’ 최후의 장면 ‘몰락. 베를린 최후의 2주일’의 이야기를 펼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