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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극장 고향에서 엄마와 함께>원주 한계산 정수영, 25년 만에 귀향, 또하나의 고향 나의어머니, 산더덕 버섯 각종 약초, 수영씨의 산골 일기
꿀이꿀이 2021. 9. 19. 23:12<인간극장>
그래도 고향에서 엄마와 함께
2021년 9월 20일
가난과 고생이 뭔지 알게 된 어린 시절부토 어떻게든 고향을 떠날 궁리만 했던 남자 정수영(53세) 씨는 고향으로 회귀하려는 본능을 가지 연어처럼 다시 돌아오게 됐다.
정수영 씨의 고향은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의 한계산으로 골이 깊고 나무가 울창해 멀리서 보면 검게 보인다는 곳이다.
‘검은 계곡의 산’ 한계산이란 이름이 붙여진 곳이다.
# 한계산에 살어리릿다.
새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산 속,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는 정수영 씨는 나무와 나무를 연결해 직접 집라인을 만들었다.
집안의 설산으로 잠시 걸터앉아 망중한을 즐길 수 있는 그네도 만들고, 외부인들의 출입이 제한돼있어 호젓한 산은 그야말로 수영 씨의 놀이터이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온 지 8년째로 산골 생활이 이리도 재미있는지 예전에는 미쳐 몰랐다고 한다.
산양삼 농사를 짓고 배수로 관리도 하고, 산짐승 퇴치 등 해야 할 일도 많지만, 복잡하고 버거웠던 도시의 삶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산더덕, 버섯, 각종 약초를 계절마다 시시때때로 자연의 선물을 받아 밥상에 올릴 때면 인생사 이만하면 좋겠다 싶다.
이제는 날이 가물면 우물에 말라 물이 끊기고, 방안에서는 인터넷을 쓸 수 없어 집 앞까지 택배를 받을 수 없는 등 여러 가지 불편함도 있지만 그 정도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다.
수영 씨는 방이 한 칸이라 매일 어머니와 한 방에서 먹고 자고 처음에는 어색하였지만 이제는 그 덕분에 까까머리 어린 시절로 돌아간 모자 관계가 되었다.
# 25년 만의 귀향
수영 씨가 태어난 곳은 읍안 부론애서도 걸어서 2시간은 걸어 들어가야 하는 첩첩산증이었고, 버스는 고사하고 제대로 된 길도 없이 산길을 걸어 학교에 다녔다.
가난한 시골의 삶은 7살이 되면 작은 지게를 선물받아 초등학생이 되면 친구들과 놀기 전에 자기 몫의 땔감을 먼저 준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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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고향을 수영 씨는 가난하고 힘든 산골 생활이었기에 항상 떠나기를 꿈꿔왔다.
떠날 수 있는 방법은 공장에 취직을 하거나, 대학을 진학하는 두 가지 뿐이었다. 그런 수영 씨는 공부를 택하였고,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강원도의 국립대학에 진학 할 수 있었다.
수d여 씨는 집안의 유일한 대학생으로 기대 속에 대학에 갈 때만 해도 인생이 장밋빛 같았는데 없는 살림에 집에서 대학생 뒷바라지를 해주기에는 어려움이 뒤따랐고, 학기 마다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수영 씨는 학군단에 지원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졸업 후 6년 4개월 군 복무를 하고 나왔더니 IMF가 터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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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있던 직장도 쫓겨나고 당연히 취업은 되지 않았다.
그는 농산물 도매시장에서 경매사로 일을 하며 남은 시간을 쪼개면서 생활용품점을 열었지만 얼마 못 가 태풍 루사로 인해 추석 대목을 앞둔 물품 창고를 휩쓸어 가면서 큰 빚만 남게 되었다.
경제적 어려움이 계속되고 결국 아내와 헤어지고, 다시 전기기술을 배워 공사 현장을 찾아다니던 수영 씨는 문득 고향이 떠올랐고 한두 번 고향을 찾아가는 횟수가 늘면서 다시 돌아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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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하나의 고향, 나의 어머니
어머니는 수영 씨의 기억에는 항상 씩씩한 여장부였다, 화천이 고향인 이순옥(83세) 할머니는 전쟁이 터지자 피난길에 올라 원주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집도 절도 없는 피난민 처지라 밥 굶지 않게 해 준다는 말에 소아마비인 남편에게 시집 온 후 어머니의 삶은 고생뿐이었다.
어머니는 일을 할 수 없는 남편을 대신해 농사 몇 자지를 짓고 산더덕을 캐 팔며 시부모와 5남매를 키워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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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씨는 어릴 적에는 남들만큼 뒷바라지를 해 주지 못하는 어머니가 원망스러울 때고 있었지만, 이제는 지팡이 없이는 걷기 힘들 정도로 쇠약해진 모습이 안쓰럽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하루라도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용양원에 계셨던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와 20살에 어머니 품을 떠나 25년 만에 어머니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얼굴만큼이나 고집 센 성격도 꼭 닮은 모자는 서로를 의지하며 오늘도 다정하게 살아간다.
그렇게 떠나고 싶었던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 자신만의 터를 가꿔 어머니와 함께 사는 그의 즐겁고 유쾌한 산골 일기를 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