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반응형

<김영철의 동네한바퀴>

행복이 물들다 치악산 동네 – 강원도 원주

20211016일 저녁 710분 방소

 

치악산 골골마다 행복이 물들어가는 동네 원주

서울과 영서 지방을 연결해주는 관문이며, 500년 강원도의 수부 도시로 오랜 시간 수많은 인생사가 모이고 흩어져있던 곳이다.

 

 

# 자유시장 손 만두 골목, ‘칼만;을 아시나요?

 

강릉과 원주의 첫 글자를 따서 유래한 강원도란 지명이 된 것처럼 원주는 예나 지금이나 강원도에서 큰 도시이다,

중앙동 자유시장에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으로 1960년대 군복, 미군 제품을 팔았던 난전을 시작으로 상가형 시장이 들어서면서 ‘원주 사람들의 밥집’이라고 불리고 있는 먹자골목이 형성되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시장에서도 눈길을 끄는 건 어머니들이 일렬로 앉아 만두를 빚고 있는 손 만두 골목으로 30여 년 전 어머니들이 집에서 김치 송송 썰어 만들었던 만두를 밀가루 보급이 빨랐던 자유시장에 자리를 잡아 팔기 시작하면서 형성되었다 한다.

 

 

자유시장에서는 인근 분식집에서 손님이 주문하면 시장에서 1인분씩 사가 끓여 파는 독특한 시스템은 이 골목만의 진풍경이다.

 

 

칼만만두 여섯 알에 칼국수 한 주먹을 넣어 칼국수와 만둣국을 줄인 말이다. 원주 사람들의 소울 푸드인 손만두 골목의 뜨끈한 칼만을 맛본다.

 

 

# 아버지의 유언 원주 한지

 

 

강원도 원주는 한지의 본고장이다.

한지의 원료인 닥나무 밭이 많았고, 조선왕조 500년의 강원감영이 있던 까닭에 한자마을과 인쇄 골목이 흥했다.

 

 

장응열 장인은 원주의 한지의 맥을 잇고, 할아버지 대부터 5년 전 합류한 사위까지 4대째 가업을 이어 한지를 뜨고 있다. 장인은 45년째 한지를 뜨고 자신의 복제인간을 가져다 놓아도 성에 차지 않을 만큼 한지에 있어서는 완벽주의자란다.

 

 

그는 젊었을 때 한지 일을 배우기 싫어 해외로 도망을 가기도 했고, 그를 다시 한지의 길로 돌아 새운 것은 아버지의 유언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 가업을 이어달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돌아가신 아버지다.

 

 

그렇게 유언을 받들어 긴 세월 한 장 한 장 한지를 뜨면서 알게 되었단다.

깃털처럼 가벼운 한지 한 장에 담긴 아버지로서의 무게를 6년 차 수제자인 사위에게는 더 엄한 호랑이 같은 선생님이고, 100년 가업을 잇는 장인어른과 한판 승부인 천년을 가는 한지 뜨는 장서를 만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