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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밥상>
밥상을 말하다
밥상머리 교육
어른에게서 아이로 전해지는 지혜, 밥상에서 밥상으로
밥상머리에서 식사 예절을 다시 배우다.
세종대왕은 항상 세자와 함께 삼시 세끼를 같이 먹고 밥상머리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고, 손수 세자 교육을 맡아했다,
퇴계 이황은 벼슬길에 올라 아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없어 수백 통의 편지로 자식과 손주에게까지 밥상머리 교육을 대신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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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밥상머리 교육은 오히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이 가정에서 조선어 사용을 막기 위해 ‘식불언’ 밥을 먹을 땐 말을 하지 말라는 밥상 예절만을 강조하게 했다.
우리가 다시 조명하고 재정립해야 할 지혜의 가정교육이 밥상머리 교육이다.
‘밥상을 말하다’ 두 번째 시간으로 퇴계 이황의 태실이 남아 있는 종택에서부터 선조들의 예의와 지혜를 배우는 서당, 홈스쿨링을 통해 현대적 밥상머리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가정의 밥상머리 교육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알아본다.
경상북도 안동시, 편지로 전하는 종가 밥상머리 교육의 원천
퇴계 이황 선생이 태어난 곳으로 유명한 노송정 종택으로 이황 선생은 벼슬길에 올라 자주 집에 오지 못해 자녀들에게 가정교육을 편지로 하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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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은 수백 통의 편지를 보냈으며 그 중에서도 밥상머리에 관련된 내용들이 많았다는데, ‘술을 과하게 마시지 마라, 미역과 소금을 사두어라’ 등 자식들이 먹고 마시는 것까지 항상 고민하고 신경을 썼던 이황 선생이었다.
이황은 자신의 아들뿐 만아니라 손자 안도에게도 보낸 편지가 100통을 넘긴다고, 노송정 종택의 종손과 종부를 찾아온 특별한 손님이 있다고 하는데, 손주 정익이로 12살 정익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노는 것이 가장 재미있다며 방학 때마다 항상 혼자 버스를 타고 이곳을 찾아오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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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최정숙 종부가 손주가 와 옛날 이황 선생이 드시던 밥상을 재현한다.
검소한 삶으로 유명했던 이황 선생은 주로 먹던 밥상도 반찬이 세 가지 이상 안 몰라갈 정도였다고 한다. 같은 남루 세 가지가 같아 보이지만 그 안에 넣는 양념이 모두 다르다고, 거피한 들깨를 넣어 들깨미역나물, 통들깨를 넣은 가지나물, 물엿을 넣어 절인 무나물, 4년 내내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들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는 종부의 삶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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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손의 감각과 정성을 다하라는 시어머니의 말을 세기며 굳건히 자리를 지킨 최정숙 종부이며, 밥상머리 교육 이면에는 종부들의 노력이 숨어있다.
손님들에게는 따로 독상을 내주고, 조손간에는 같이 앉는 예법과 귀한 생선 몸통은 손님을 내어드리고 머리와 꼬리는 주인이 먹는 예법까지 종갓집 가정교육은 누구보다 깊은 배려와 밥상머리의 일환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