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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온>

푸른 눈의 조선인. 100년의 러브레터

 

1929년 한국 최초 마술사 통사가 발간되어 우리나라 미술사를 전 시대와 전 지역에 걸쳐 통사형식으로 기술한 책 <조선미술사>이다.

이 책을 쓴 사람은 놀랍게도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 독일인 신부이다.

한국을 제 2의 조국이라 부를 정도로 열렬히 사랑하였던 푸른 눈의 조선인인은 누구일까?

 

 

일제강점기 한국으로 와 식민 지배 아래 사라질 위기에 처한 조선의 문화재를 지키고 기록한 독일인 안드레아스 에카르트의 삶을 조명한다.

그는 석굴암에 최초로 올라간 유럽인, 독일 최초의 한국학자, 최초의 조선 미술사 통사 저자 등...

에카르트를 지칭하고 있는 수식어만 봐도 한국에 대한 그의 관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다.

K- 컬쳐가 전 세계의 극찬을 받는 현재 100여 년의 세월을 건너 그가 한국을 위해 남긴 애정 어린 기록들을 볼 수 있다.

 

 

조선 학교의 외국인 교장 선생님

0909년 남자 수도회에서 처음으로 조선에 진출한 독일의 성 베네딕도회에서 6명의 젊은 독일 신부들이 부푼 기대를 안고 조선에 도착하게 된다.

독일 신부들은 교육 선교를 목표로 조선에 온 그들은 숭공학교, 숭신힉교를 설립해 기술자과 교사를 양성했다.

 

 

에카르트는 숭신학교 교장을 맡아 학교에 쓸 교과서까지 직접 집필할 정도로 열정을 쏟았지만 1910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어 사림학교에 대한 일제의 탄압이 심해졌고, 선교보다는 우선 되어야 한 다른 사명이 눈을 돌리게 된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20여 년의 기록

에카르트는 선교사가 되기 전에 뮌헨 대학에서 고고학과 미술학을 전공하였고, 피지배국의 유물이 되어 파괴와 약탈에 노출된 조선의 문화재가 손수 찾아다니며 사진과 그림을 하나하나 기록하기 시작하게 되었단다.

 

 

그의 관심은 한글, 문학, 음악, 미술, 건축, 식물까지 분야를 막론하고 그의 기록을 본 사람들은 그의 꼼꼼함과 압도적인 양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평안도의 강서대묘 조사 작업에 직접 참여했고, 폐허가 된 석굴암의 복원을 제안하기도 하는 등 에카르트가 남긴 흔적은 조선 전역에 남아있고, 20여 년 동안 걸쳐 방대하게 수집하고 정리된 그의 기록들을 본다.

 

 

같은 시기, 같은 이름으로 나온 전혀 다른 두 권의 <조선미술사>

에카르트는 독일로 돌아가 자신의 기록들을 모아 1929<조선미술사>를 독일어와 영어로 동시에 출판되었다. <조선미술사>는 세계미술사에 조선의 존재를 알리는 큰 계기가 되었다.

 

 

일본학자 세키노 다다노시는 3년 뒤 1932년 같은 이름으로 책을 발간했지만 두 책이 조선 미술을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갈렸고, 조선 미술을 중국 미술의 영향으로 발전한 아류 문화로 보았던 일본과는 달리 한국의 독창성과 절제미를 강조한 에카르트의 기록은 일본, 중국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한국 문화만의 자주성을 널리 알리는 소중한 자료가 되었다.

국립 민속 박물관이 2년에 걸쳐 복원한 <삼국지연의도>는 에키르트의 ,조선미술사>에 기록된 원본 그림을 고증으로 복원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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