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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극장>
우리 동네 사위, 장 서방이 떴다
시골 농부를 꿈꾸던 도시 남자
어린 시절 주말농장을 운영하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장영탁(41세) 씨는 젊은이들의 귀농이 흔하지 않던 시절에 시골 생활을 꿈꿨다.
영탁 씨는 주말마다 친척들과 가족들이 모여 농사를 짓고 함께하던 날들이 항상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었단다.
그래서 그는 ‘농사는 즐겁다’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고, 대구에서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던 아버지의 밑에서 평탄하게 자란 그는 그런 기억으로 시골 생활을 그리워하며 농부가 되기를 꿈꿔왔다고 한다.
영탁 씨는 도시에서 10년 동안 자동차 정비사로 일을 했지만, 마음속에는 귀농의 꿈이 자라고 있었다고, 20대부터 축사를 운영하던 외삼촌을 찾아가 경험을 쌓고 조언을 받기도 했고, 직접 수소문하여 찾아간 연근 밭에서도 일을 하는 등 농촌에 연고가 있는 친척들과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귀농 계획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운명적인 아내 장혜리(39세) 씨를 만났고, 하루라도 빨리 귀농해 농부로 자리 잡기를 원하였고, 아내는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영덕에 자리를 잡고 농사를 지으시는 혜리 씨의 부모님께 처음 인사를 드리고 결혼과 농사짓는 일을 장모님의 허락을 받게 되어, 그렇게 영탁 씨는 짐을 싸 영덕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넝쿨 채 굴러들어온 복덩이, 장 서방
농촌 생활에 들떠있던 영탁 씨는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는데,
성격이 급하고 욕심 많은 장모님 밑에서 일하며 혼나고 부딪히는 날도 적잖았다. 그는 한 때는 보따리를 싸들고 시내로 집을 구해 나왔던 적도 있었지만, 호된 농사 수업 덕분에 어설펐던 초보농사꾼에서 농사를 잘 짓기로 동네에서 소문난 손꼽히는 최고의 농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장모님 덕분이었다.
장모님이 영탁 씨에게 호되게 했던 것은 진짜 이 동네 사람이 되길 바라셨고, 낯선 마을 사람들과 잘 어울리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영탁 씨는 마을 어르신들의 고충을 들어주며 어려움을 해결해준 덕에 지금은 ‘우리 장 서방, 우리 장 서방’이라 할 정도로 믿음직한 동네 사위가 될 수 있었단다.
그는 바쁜 시간을 쪼개서 의용소방대 봉사활동을 하고 이제는 장인 장모님 뿐 아니라 동네 전체에서 넝쿨째 굴러온 복덩이가 된 우리 동네 사위 장 서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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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다 함께 잘 먹고 잘 사입시더”
영탁 씨가 처가로 내려온 지 10년 이제는 시금치, 토마토, 감자 농사까지 짓는 전천후 농부가 되었고, 대구와 영덕을 오고가며 아들의 농사일을 돕던 부모님도 4년 전 영덕으로 완전히 귀농을 하셨고, 온 가족이 농사를 지으며 함께 살고 싶었던 꿈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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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탁 씨의 새로운 목표는 떠나간 사람들이 다시 농촌으로 돌아와 농사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하는 것이라고, 주변의 만류하고 반대해도 영덕 최초의 멜론 재배에도 성공하면서 후배 귀농인들의 멘토 역할도 열심히 하려고 한다.
도시에서 느낄 수 없었던 사람 사이의 깊은 정을 알게 되었고, 농사를 지으면서 모두가 함께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단다.
그의 꿈인 온 가족이 모여 농사를 지으며 행복하게 사는 것, 우리 가족뿐 아니라 온 동네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꿈꾸는 세상을 만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