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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연인이다>
자연인 권규환
내가 비워낸 것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깊은 산골에서 뜻밖의 것들이 숨겨져 있다.
산허리의 평지, 메마르고 황량한 숲에서 피어오르는 기름진 고기 냄새와 고립과 고독 속에서 항상 웃음을 띠는 자연인 권규환(72) 씨이다.
자연인은 여유롭지만 부지런하고, 웃지 못 할 상황에서도 웃고, 산에서 산다는 것은 울 시간도 없고, 운다고 해도 자연인의 등을 토닥여 줄 사람도 없어 산으로 들어오게 되었단다.
권규환 씨는 순종적인 장남으로 부모님이 하시는 농사일을 돕고, 자연스럽게 농사꾼으로 일생을 보내는 것이 자연인에게 주어진 숙명이라 생각했다는데, 꿈을 향해 타지로 나갔던 동생들과 친구들을 보면서 조금씩 시골 너머의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고, 새로운 인생을 모색하게 되었단다.
자연인이 찾은 길은 화물차 운송 사업은 농사에 비해 덜 힘들고 더 벌 수 있는 매력적인 일이었는데, 잊을 만하면 터지는 크고 작은 사고들로 아슬아슬했지만 조금만 더, 1년만 더 그러다 정말 큰 일이 터지고 말았다.
그의 화물차를 통근버스가 뒤에서 받아버렸는데, 추돌 사고로 인해 사람이 죽게 되며 그의 과실 비율이 30%로 많은 수리비와 피해 보상금을 지불해야만 했단다.
큰 사고로 인해 전 재산을 정리하게 되는데, 쌓아 올리는 건 어렵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었는데, 허덕이는 일상과 잦은 다툼으로 이혼을 하게 되었다.
신세 한탄할 새도 없이 남아 있는 빚을 갚아야 하기에 닥치는 대로 일을 하는 동안 자신과 똑같은 화물차 사고가 났고, 그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는 막냇동생의 비보까지 눈물 마를 날 없이 20년이 흘러갔다.
자연인은 10년 전 산골에서 소소하게 농사지으며 살면 지루할 정도로 평화로웠던 예전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마지막 희망을 품고 산골로 들어왔다.
그는 아픈 기억을 떠오를 틈도 없이 정신없이 몸을 움직였고, 직접 담근 막걸리 한잔에 혹시 모를 근심을 털어내는 소소한 일상이다.
자연인은 같이 키우는 개들이 닭을 물어 죽여도 몸보신할 기회라고 웃어넘기고, 누나의 레시피를 따라 만든 돼지갈비찜을 먹으면 추억을 떠올려본다.
직접 농사지은 사과로 사과찐빵을 만들어 먹으면 한 입에 행복이 채워진다.
자연인 권규환 씨는 모든 것을 비워내고, 누구보다 풍족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