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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찰스>
아프가니스탄 기여자
“제게 한국의 의미는 곧 ‘삶’이에요.”
울산 정착 1주년 서부동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아본다.
탈레반은 2021년 8월 20년 만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철수를 결정한 이후 수도 카불을 점령하게 된다.
아프가니스탄의 평화는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말았다.
외국 정부와 함께 일한 사람들은 모두 ‘부역자’로 낙인찍히고, 그들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한 폭압이 이어지고,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한국 정부의 아프간 재건 사업이 직접 참여한 현지인들과 그들의 가족들까지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으로 그들을 두고만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 정부는 재건 사업에 참여한 현지인을 구출하기로 하고, 작전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2021년 8월 26일 카불 함락 열흘 째날 79가구 391명이 한국군 수송기를 타고 우리나라에 입국했다.
2022년 2월 7일 그들 중에 29가구 157명은 울산광역시 서부동에 장착하며 제 2의 인생을 살게 됐다.
그들은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난 지 1년으로 낯설고 막막했던 타국에서의 날들을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한국을 잘 알게 돼서 한국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한국에서 소녀들은 꿈을 꾸기 시작하였다.
탈레반 집권 이후 여성들의 교육은 전면 금지 되었고, 아프간 현지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조흐라(20) 씨는 탈레반 집권 이후 외출도 하지 못했단다. 대학에 가 의사가 되고 싶었던 조흐라의 꿈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말게 되었던 것이다.
바금람 한국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아버지 후세인(51) 씨를 따라 일곱 가족이 한국에 정착하게 됐는데, 대학을 졸업한 후 직업을 구해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고 싶은 조흐라다.
수줍은 많은 조흐라는 한국에 온 후 자신 앞에 주어진 낯선 길을 씩씩하게 걸어간다.
아프간의 아이들의 한국어 공부를 도와주었던 선생님은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이 한국에 잘 적응할 수 있고,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뿌리 내리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마지막 한국어 수업 시간, 아프간 소녀들은 외롭고 아득했던 1년 시간을 함께 한 선생님과 친구들을 떠올리며 다시 의지를 다진다.
“힘들어도 잘 살아야 해요. 힘들 때면 처음 한국에 온 그날을 떠올려요.”
눈앞에 놓인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아프간 현지에서 각자의 전문 분야를 살려 일하던 사람들 의사, 간호사, 통역사, IT전문가 등 사선을 넘어 정착한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조흐라의 아버지인 후세인 씨는 연년생 두 자녀의 대학 입학을 앞두고 주만 작업도 불사하며 일한다.
아프간에서는 좀처럼 몸에 익지 않은 일이며, 대학 교육이 무상이었는데 한국 학비는 비싸 후세인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다.
동네에서 무사히 적응하는 것 또한 다른 숙제인데 바그람 한국병원의 한국 의료진과 아프간 현지인들 사이에서 통역을 맡은 지아우딘(41) 씨는 한국에 온 이후 부쩍 스트레스가 심해진 둘째 딸 때문에 근심이 많다.
그는 출퇴근 시간과 쉬는 시간에 한국어를 공부하고, 자율방범대 활동을 하며 동네 사람들의 진짜 이웃이 되기 위해 정성을 가한다.
2017년 카불 자살 폭탄 테러의 피해로 몸도 성치 않지만 자신에게 찾아온 두 번째 인생을 잘 살아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우리 같이 , 울산에서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지난 1년 아프간 가족들의 삶은 완전한 건 우리의 이웃들이었다.
그들은 하루아침에 뒤바꿔진 삶으로 쉽지 않았던 그 삶을 무사히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응원하고 도와주는 수많은 사람들 덕분이란다.
첫 출근, 첫 등교, 수많은 처음을 함께 해주는 고마운 사람들, 울산 정착 1년, 아프간 가족들이 마음을 모아 울산에서의 1년을 함께한 고마운 사람들을 초대해 음식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일이라 믿는 아프간 가족들이다.
아프간의 가족들은 자신들의 진심이 한국 친구들에게 닿길 바라며 전통 음식 카불리, 프리니, 등 손수 만든 음식을 정성을 드려 차려낸다.
웃음과 눈물로 들여다보는 아프간 가족들의 1년은 아이들 걱정, 학비 걱정, 고국에 두고 온 가족들 걱정 등 수 많은 걱정 속에서 삶은 이어졌다.